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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네!"
"내일 시합 있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 네."
"하여튼 대답은 잘한다니까. 얼른 씻고 들어가. 대충 씻지 말고."
"잘 씻는다니까!"

 꿈을 꿨다. 기억 속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상자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빛바랜 추억들이 머릿속을 잠식해왔다. 멍하게 방 안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점멸하는 시야에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이번에도?」
"미안, 못 갈 것 같아."
「...그래. 다음에 우리끼리 보자.」
"하룻치랑 둘이?"
「응, 우리 둘이.」

 그래. 제 대답에 밝아지는 목소리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눈이 시려운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강의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가니 평소 같았으면 다들 죽어있을 사람들이 어쩐지 들떠 북적북적했다. 강의실에 들어가 간신히 비어있는 자리를 잡은 사와무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이준!"
"오늘 왜 이렇게 시끄러워?"
"몰라. 오늘 무슨 프로선수가 와서 특강해준다는데."
"그래?"

 동기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다 교수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자세를 바로했다. 교수가 하는 말은 늘 하는 말과 같았다. 어렵게 모신 사람이다, 좋은 기회니 놓치지 말고 잘 들어라. 기분이 좋지 않은 꿈을 꿔 잠을 설친터라 교수의 말을 흘려들으며 엎드리려던 사와무라가 작은 탄성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덜컹- 책상이 움직이며 거친 소리를 냈다.

"미유키 카즈야?"
"사와무라! 앉아라!"
"아, 넵!"

 자신을 바라보며 수근거리는 소리에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저를 보며 키득키득 웃는 얼굴은 2년 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조금 더 선이 굵어졌나. 키가 더 컸나? 저에게 미유키 선수의 팬이었냐 물어보는 동기들의 말에 질색을 한 사와무라가 여전히 저를 진득히 바라보고 있는 미유키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안녕하십니까. 미유키 카즈야입니다."

 저에게서 시선을 뗀 그가 입을 열었다. 프로에 입단했다고 하던데 진짜였나. 자신의 프로필을 말하며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이는 미유키의 모습은 제가 아는 미유키가 맞았다.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예의상 올려둔 종이에 낙서를 하는 사와무라를 옆에 앉은 동기가 툭툭 쳤다.

"왜?"
"-세이도 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 부터 포수를 맡았고,"
"미유키 선수가 자꾸 너 쳐다보는데."
"2학년 가을 주장이 되었으며-"
"쳐다보던지 말던지."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냥 아직은 조금 만나기 불편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와무라가 결국 책상에 철퍼덕 엎드렸다.

"사와무라군, 집중해주세요. 또 이상한 낙서 하지 말고."
"하아?"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에 책으로 얼굴을 가린 사와무라가 미유키를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야, 저 인간!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에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꾸 저를 쿡쿡 찔러오는 동기의 펜을 뺏은 사와무라가 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어디가?"
"출석 또 안한대?"
"응...가게?"
"당연하지. 이따 보자!"

 3시간 연강이니 미유키가 잠깐 쉬는 것이 어떻냐며 제안을 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틈!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섞이려는 순간이었다.

"컥-"
"어디 가? 사- 와- 무- 라-"
"그러니까 부모님이 아프셔서..."
"하? 너희 부모님은 나가노에 계시잖아?"
"아니 할아버지가..."
"사와무라."

 제 후드를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안하는 미유키에 도망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서있으니 슬그머니 손을 놓는 미유키였다. 사와무라? 제 이름을 재차 부르는 미유키에 사와무라가 그럼 이만! 인사를 하곤 밖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려고 했다.

"하.하.하. 역시 프로 선수는 다르군요!"
"자꾸 어딜 도망가."
"일단 놓아주십쇼. 미유키 카즈야!"
"왜 다시 반말로 돌아온건데."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커다란 손에 사와무라는 정말로 자신이 도망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의 말에 사와무라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웠다. 정말 하나도 안 변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은 아직 어색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닌지 그 역시 잡고 있는 손을 놓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미유키 선배는 잘 지냈습니까?"

 제 물음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랐음이 표정에 여실하게 들어났다. 너는? 미유키가 저를 걱정스러움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봄에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저야 당연히 잘 지냈죠!"
"나는 아니었는데."
"네?"
"아, 강의는 마저 해야지. 여기 앉아있어."

 도망가면 알지? 도망가려던 그 자세 그대로 미유키의 바로 앞에 앉게 된 사와무라가 낭패를 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왜 여기 있냐. 자리로 돌아온 동기들이 사와무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감에 사와무라는 부루퉁하게 동기들의 손길을 받으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죠? 아, 고등학교 때?"

 세이도의 투수진은 항상 훌륭했습니다. 그들의 공을 받는 것은 제 행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오롯이 저만이 담겨있는 그 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제 실책이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투수를 잃었습니다."

 정처없이 헤매던 눈이 미유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와무라."
"넵."
"감독님 지시는 들었지?"
"이 사와무라 에이준, 반드시 보스의 기대에 부응해!"
"시끄러워, 사와무라."
"아파!"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모두, 앞에서 공을 받기 위해 자리 잡은 미유키. 아스라이 흩어져가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책감에 물든 그 사람의 얼굴이 보고싶지 않았다.

"어디 가?"

"집."


 그 때의 사와무라 에이준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사와무라 에이준은 이제 없었다. 이래서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눈 앞이 뿌얘짐에 눈을 벅벅 문지르며 강의실을 벗어났다. 하하호호 떠드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나 도쿄에 남아있지 말걸 그랬나봐. 어떤 미련이 남아 자신이 도쿄에 남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의 그런 표정은 절대로 보기 싫었다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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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 선배는."
"응?"
"왜 저랑 사귐까?"

 그 말에 그는 어떻게 대답을 했더라.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서히 멀어져갔다.

-2번 미유키 카즈야 선수! 유격수 앞 안타-!

가끔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있는 과거의 모습에서 조금, 아주 조금 변한 그 모습으로. 여름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당당히 서있었다.

"마셔도 되는거냐, 이거?"
"싫으면 먹지 말던가!"
"이야이야, 카네마루군이 사와무라군을 위해 만든거라니 이 사와무라 에이준 원샷을 해보겠습니다!"
"취했네."
"너한텐 듣고 싶지 않거든!"

 후루야군, 그만 마셔. 하루이치에게 잔을 빼앗긴 후루야가 우울한 눈으로 잔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시진 않네. 하루이치의 말에 후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가 파하고 인사불성이 된 사와무라를 토죠가 후루야에게 업혀주었다.

"조심해."
"응.."

 무거워- 후루야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후루야의 팔은 단단히 사와무라를 고정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와무라와 자취를 한 지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 사람을 보면 모두를 모아서 술을 잔뜩 마시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터였다.

"짜증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얄미운 사람. 미유키 카즈야에 대한 후루야 사토루의 정의였다.

"후루야."
"왜."
"목말라."
"이따 마셔."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등 위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날뛰는 사와무라 때문에 후루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짜증나.

"오늘 늦어?"
"응."

 왜? 되물어오는 후루야에 사와무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멍을 때리고 있는 사와무라에 후루야가 고개를 갸웃하곤 신발 앞코를 툭툭 쳤다. 잘 가. 제가 문을 열고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후루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야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대학으로 진학한 저와 다르게 프로로 입단한 후루야는 항상 바빴다. 어제도 후루야가 자신을 업고 갔다는 하루이치의 메신저에 사와무라가 고뇌에 빠져들었다. 카니타마라도 만들어야하나. 조용한 집 안 사와무라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후루야가 집에 돌아왔을 때 사와무라는 식탁에서 자고 있었다. 적막감 가득한 집은 사와무라랑 어울리지 않아. 후루야가 사와무라의 어깨를 흔들었다.

"...-"
"사와무라."
"후, 루야?"
"들어가서 자."
"왜 화를 내고 그래!"

 -미유키. 사와무라가 무심코 중얼거렸던 그 이름이 조금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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