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8건

작가님.”

.”

지금 오디션 시작한대요.”


대본을 정리해 품에 안은 쿠로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님이 계셔서 저희가 조금 더 수월하네요. 오디션 장소를 안내하던 스텝이 웃으며 말했다. 그저 제 작품이 조금이라도 쓴 소리를 안 들었으면 하는 이기심에 시작된 일이라 멋쩍게 웃은 쿠로코가 오디션 장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맞아주는 감독에게 꾸벅 인사를 한 쿠로코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배우 분 들어갑니다. 저 앞에서 스태프가 외치는 소리에 쿠로코가 자세를 바로 했다.


여러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고 또 다른 역할의 대본도 받아 연기를 했지만 앞에서 캐스팅을 위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명단을 뒤적이고 있었다. 쿠로코가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걔는 언제 나온대요? 조감독의 말에 쿠로코가 그를 돌아보았다. ‘?


, 키세 료요. 작가님 아세요?”

아니요.”

하긴. 이제 갓 데뷔한 배우니까요.”

잘 하나 봐요?”


쿠로코의 말에 감독과 조감독이 서로를 바라보다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보면 알아요. 마침 들어오네. 감독의 말에 쿠로코가 막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훤칠하게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이 꽤 많은 시청자들을 몰고 올 수 있겠구나, 하며 그의 이름을 찾아 두어 번 별을 그렸다.


카이조의 키세 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키세가 감정을 잡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에 쿠로코가 종이에 두었던 시선을 무대 위로 옮겼다. 약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남자는 제법 빛나고 있었다. 키세가 연기를 시작하고 쿠로코는 딱 두 마디의 평가를 내렸다.


영혼이 없네요.”

그게 문제죠.”


잘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영혼이 없다니까. 감독의 말에 쿠로코는 키세의 이름에 줄을 그었다. 미안하지만 연기 연습 더 하고 오세요. 속으로 작은 사과의 말을 덧붙이며.


최종 캐스팅은 감독님한테 맡길게요.”

하하, 어깨가 무겁네.”

제가 감독님이랑 작업 한 두 번 하나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디션을 본 배우들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한 번 훑은 뒤 감독에게 건네는 마음은 심란했다. 작가님, 대본 잘 부탁드려요! 등 뒤로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에는 더욱 더. 온갖 변수에 휘말리지 않고 무탈히 작품에 들어갈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오디션 장을 나섰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촬영장에 한 번 놀러오라는 이즈키의 말에 쿠로코가 촬영장을 찾았다. 야외의 세트장에 들어서자 이즈키가 그를 발견하곤 어서 오라며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오늘 촬영하는 게 이 부분이에요?”

어때? 제법 비슷한 곳으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괜찮습니다.”


아늑한 느낌의 작은 카페는 남자주인공 시노오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였다. 카페의 유니폼을 입고 동선 설명을 듣던 키세가 쿠로코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콘티 보세요. 제 입모양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키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감독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커피도 키세군이 직접 만드는 겁니까?”

아까 여기 사장이 와서 알려주고 갔지. 재밌다고 좋아하던데.”

그래요?”

근데 키세랑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친해지긴요.”


여기 앉아도 되나요? 쿠로코가 촬영장비들 뒤편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사각지대니까 마음대로 해. 이즈키의 말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쿠로코가 여분의 대본을 받아 촬영장에서 일하는 막내작가에게 오늘 촬영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데 비어있는 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설명 다 들었습니까?”

!”

오늘은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겠네요.”

저 요즘 잘한다고 칭찬 받슴다!”


그렇죠? 확인이라도 받듯 물어보는 키세에 둘의 만담을 영화 관람하듯 지켜보던 이즈키가 그럼, 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자 것 보라며 키세가 씩 웃었다. 그렇게 가르쳐드렸는데도 못 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쿠로코의 말에 이즈키가 불법과외냐며 키세의 등을 퍽퍽 때리며 웃어댔다.


그 무슨 로봇 있잖아. 요즘 유명한 거. 난 처음에 그건 줄 알았다니까!”

, 저도 동감합니다.”

너무해!”


이제 촬영 시작합시다. 키세를 놀려먹을 만큼 놀려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즈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스텝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쿠로코 역시 구석에 앉아 스탠바이를 하고 있는 키세와 모모이를 지켜보았다. 주문을 하는 모모이에 제법 진지하게 커피를 내리는 키세의 모습은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어설퍼보였다.


!”

!”


샷이 담긴 잔이 바닥에 뒹굴었다. 구급상자 가져와! 부산스러운 스텝들을 뒤로 하고 제 손을 붙잡은 채로 당황하고 있는 키세의 손을 싱크대 속으로 집어넣고 물을 틀었다. , 작은 신음소리에도 화들짝 놀란 쿠로코가 물의 세기를 줄였다.


저 괜찮슴다.”

그래도 약 바르고 붕대 감아.”

.”


괜찮습니까?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살펴본 쿠로코가 키세의 안색을 살폈다. 갓 내린 커피에 손을 데였으니 퍽 놀랐을 터였다. 그런 쿠로코를 눈치챘는지 키세는 정말 괜찮다며 작게 웃어보였다. 잠깐 쉬었다갈게요. 쉬고 있으라며 일어서려는 키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른 이즈키가 대타라도 써야겠다며 스텝들을 모았다.


제가 할 수 있슴다!”

다쳐놓고선 뭘.”

제가 조심할게요!”


키세의 말에 이즈키가 그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한 번 해보라고 하죠. 쿠로코의 말에 키세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쿠로콧치는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슴다.”

배우의 연기 열정을 막는 못된 사람은 아닙니다만.”


대신 한 번 더 다치면 그 땐 대타 써야합니다. 그 말을 들은 키세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그럼 붓기 가라앉을 때까진 조금만 더 쉬고 커피나 마시죠. 이즈키의 말에 스텝들은 좋다며 각자 먹고 싶은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여기 이 부분 동선 말이야. 이즈키가 키세에게 수정된 동선을 알려주는 동안 할 게 없어진 쿠로코는 대본을 뒤적거리다 문득 테이블 위에 올려진 키세의 손을 발견했다. 제 손과 다르게 크고 기다란 손가락에 쿠로코는 그의 손 옆에 제 손을 올려보았다.


쿠로콧치?”

키세군, 손 진짜 크네요.”


이거 보세요. 제 두 배입니다. 아예 엎어져있는 키세의 손을 들어 제 손과 맞댄 쿠로코에 키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 쿠로콧치이-? 삑사리가 나는 키세의 목소리는 아랑곳 않은 쿠로코는 신기하다며 맞댄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확실히 키가 크니까 손이 큰 것 같습니다... 키세군?”

키세가 죽어가기 전에 촬영 들어가자.”


이즈키가 키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세, 메이크업 고쳐라. 이즈키의 말에 키세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쿠로코는 이내 관심을 거두고 중단되었던 부분의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2016. 5. 31. 22:5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6. 5. 31. 22:4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2016. 5. 31. 22:3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KnB 2016. 5. 22. 13:42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키세가 황금빛 모래알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나도 바- 다-!"

"안 돼."

"왜!"

"화장 지워지니까."


 단호한 코디의 말에 키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파라솔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바다에 와서 몸에 물 하나 묻히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자니 온 몸이 찌뿌둥한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면 들어가게 해줄게. 저를 달래는 매니저의 말에 자신이 애냐며 투덜거린 키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시작하죠!"

"애 맞네."

"애지 뭐."


 키세의 조름으로 빨리 시작된 촬영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끝이 났다. 내일도 촬영 있으니까 적당히 놀아.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키세가 신나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시원한 바닷물이 제 몸을 감싸는 느낌이 기분이 좋아 조금 더 물 속으로 들어갔다. 키세, 멀리 가지 마! 저 멀리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일본 맞아?'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제 시야에 보이는 풍경은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의 바닷속 같았다. 푸르게 빛나는 산호초들을 헤치며 물고기떼들을 구경하던 키세가 물 밖으로 나왔다.


"아."


 물을 뜨려고 했는지 그릇을 들고 엉거주춤 서있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심까. 지금 나 좀 바보 같지 않았나? 제 인사에 놀란 표정을 지은 소년을 보며 키세가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이내 제 인사를 받아주는 소년에 고개를 드니 제게 손을 내미는 소년이었다. 그 손을 잡으니 덩치에 맞지 않는 힘으로 저를 위로 이끌었다.


"눈?"


 키세의 눈에 보인 것은 만년설이 뒤덮힌 푸른 언덕이었다. 수영복 하나만 달랑 입고 있어 차가운 바람에 몸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많이 추우신가요? 소년의 걱정스러운 어투에 키세가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이 저를 건드리니 소년의 손이 닿은 곳부터 따스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 했다.


"감사함다."

"아니에요."


 일단 들어가시는게 어떠세요. 소년이 기후와 이질적인 제 옷차림을 보며 말을 했다. 키세도 아무렇지도 않던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워 머쓱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살고 있는 곳은 바닷가 근처의 나무로 만든 집이었다. 만년설이 소복히 올라가있는 언덕과 잘 어울리는 풍경에 키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담요와 함께 가져온 따뜻한 얼그레이는 소년과 잘 어울리는 듯 했다.


"손님이 온지 오래돼서 조금 들떠버렸네요."


 말갛게 웃는 소년의 얼굴이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순수한 호의는 받아본지도 오래된 탓에 키세는 괜시리 후끈거리는 볼을 만지작거렸다. 이름이 뭐에요? 소년이 질문했다.


"키세 료타임다."

"키세!"

"네."

"따뜻한 이름이네요."


 당신 눈 같아요. 소년의 말에 키세의 얼굴이 잘 익은 홍당무 같이 빨개졌다. 더 이상의 말을 들으면 정말로 얼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 그 쪽은 이름이 뭠까? 키세의 말에 소년은 '쿠로코 테츠야'라고 대답했다. 쿠로코, 쿠로코 입 안에서 몇 번 감돌던 이름은 익숙한 듯 감기었다.


"그럼 쿠로콧치라고 부르겠슴다!"

"...쿠로콧치?"
"제가 인정한 사람에겐 무슨무슨 치라고 하거든요!"

"사람, 이요."


 제 말에 쿠로코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그 후로도 쿠로코와 이야기를 제법 나누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던지 좋아하는 동물이라던지. 그러나 그에 대한 것은 그다지 알 수 없었다. 쿠로코의 호의로 가득한 모든 것들을 키세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연예계에 살면서 받기 힘든 것들을 쿠로코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주었다. 어느 덧 창 밖으로 해가 붉은 노을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키세의 말에 쿠로코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키세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만날 수 있을검다! 바다로 첨벙 뛰어든 키세가 쿠로코를 향해 환히 웃어보였다. 제 감은 생각보다 정확하거든요! 키세의 말에 쿠로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얼른 가지 않으면 바닷길이 막힐거에요."

"길이 막혀요?"

"부디 그대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쿠로코가 키세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곤 어깨를 밀자 키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엔 오면서 보았던 산호초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키세가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니 매니저가 벌써 왔냐며 반색을 보였다.


"벌써?"

"뭐야. 들어간지 5분도 안되서 나오고. 친구가 없어서 재미 없냐?"

"제가 5분만에 나왔슴까?"

"시간 감각도 사라졌어? 안 놀거면 나와. 내일 촬영 있으니까."


 허둥거리는 그를 매니저가 끌어올렸다. 코디가 들고 오는 수건을 걸쳐주며 감기 조심하라 신신당부 하는 매니저의 목소리는 키세에게 들리지 않았다. 꿈이었나? 얼빵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키세의 물기를 닦아주던 코디가 드디어 미친거냐며 웃었다.


"에?"

"머리에 꽃도 꽂고 진짜 이상하네."

"꽃이요?"

"얘 방금 바닷가에서 나왔는데 무슨 소리야."


 코디의 손이 키세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 코디가 건네준 꽃을 바라보았다. 백리향. 생일날 제 탄생화라며 팬들이 보내준 기억이 있었다.


'부디 그대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쿠로코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제게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KnB'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우 썰 백업  (0) 2016.05.31
[엽궁] 낙엽  (0) 2016.04.24
[류빙] 아날로그  (0) 2016.04.16
[황흑] 미필적 고의 (센티넬버스AU) 1  (0) 2016.04.15
[적흑] 꽃놀이  (0) 2016.04.12
"사와무라!"
"네!"
"내일 시합 있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 네."
"하여튼 대답은 잘한다니까. 얼른 씻고 들어가. 대충 씻지 말고."
"잘 씻는다니까!"

 꿈을 꿨다. 기억 속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상자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빛바랜 추억들이 머릿속을 잠식해왔다. 멍하게 방 안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점멸하는 시야에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이번에도?」
"미안, 못 갈 것 같아."
「...그래. 다음에 우리끼리 보자.」
"하룻치랑 둘이?"
「응, 우리 둘이.」

 그래. 제 대답에 밝아지는 목소리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눈이 시려운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강의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가니 평소 같았으면 다들 죽어있을 사람들이 어쩐지 들떠 북적북적했다. 강의실에 들어가 간신히 비어있는 자리를 잡은 사와무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이준!"
"오늘 왜 이렇게 시끄러워?"
"몰라. 오늘 무슨 프로선수가 와서 특강해준다는데."
"그래?"

 동기와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다 교수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자세를 바로했다. 교수가 하는 말은 늘 하는 말과 같았다. 어렵게 모신 사람이다, 좋은 기회니 놓치지 말고 잘 들어라. 기분이 좋지 않은 꿈을 꿔 잠을 설친터라 교수의 말을 흘려들으며 엎드리려던 사와무라가 작은 탄성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덜컹- 책상이 움직이며 거친 소리를 냈다.

"미유키 카즈야?"
"사와무라! 앉아라!"
"아, 넵!"

 자신을 바라보며 수근거리는 소리에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저를 보며 키득키득 웃는 얼굴은 2년 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조금 더 선이 굵어졌나. 키가 더 컸나? 저에게 미유키 선수의 팬이었냐 물어보는 동기들의 말에 질색을 한 사와무라가 여전히 저를 진득히 바라보고 있는 미유키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안녕하십니까. 미유키 카즈야입니다."

 저에게서 시선을 뗀 그가 입을 열었다. 프로에 입단했다고 하던데 진짜였나. 자신의 프로필을 말하며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이는 미유키의 모습은 제가 아는 미유키가 맞았다.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예의상 올려둔 종이에 낙서를 하는 사와무라를 옆에 앉은 동기가 툭툭 쳤다.

"왜?"
"-세이도 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 부터 포수를 맡았고,"
"미유키 선수가 자꾸 너 쳐다보는데."
"2학년 가을 주장이 되었으며-"
"쳐다보던지 말던지."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냥 아직은 조금 만나기 불편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와무라가 결국 책상에 철퍼덕 엎드렸다.

"사와무라군, 집중해주세요. 또 이상한 낙서 하지 말고."
"하아?"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에 책으로 얼굴을 가린 사와무라가 미유키를 노려보았다. 무슨 속셈이야, 저 인간!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에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꾸 저를 쿡쿡 찔러오는 동기의 펜을 뺏은 사와무라가 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어디가?"
"출석 또 안한대?"
"응...가게?"
"당연하지. 이따 보자!"

 3시간 연강이니 미유키가 잠깐 쉬는 것이 어떻냐며 제안을 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이 틈!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섞이려는 순간이었다.

"컥-"
"어디 가? 사- 와- 무- 라-"
"그러니까 부모님이 아프셔서..."
"하? 너희 부모님은 나가노에 계시잖아?"
"아니 할아버지가..."
"사와무라."

 제 후드를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안하는 미유키에 도망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서있으니 슬그머니 손을 놓는 미유키였다. 사와무라? 제 이름을 재차 부르는 미유키에 사와무라가 그럼 이만! 인사를 하곤 밖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려고 했다.

"하.하.하. 역시 프로 선수는 다르군요!"
"자꾸 어딜 도망가."
"일단 놓아주십쇼. 미유키 카즈야!"
"왜 다시 반말로 돌아온건데."

 제 손을 붙잡고 있는 커다란 손에 사와무라는 정말로 자신이 도망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의 말에 사와무라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웠다. 정말 하나도 안 변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은 아직 어색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닌지 그 역시 잡고 있는 손을 놓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미유키 선배는 잘 지냈습니까?"

 제 물음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랐음이 표정에 여실하게 들어났다. 너는? 미유키가 저를 걱정스러움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봄에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저야 당연히 잘 지냈죠!"
"나는 아니었는데."
"네?"
"아, 강의는 마저 해야지. 여기 앉아있어."

 도망가면 알지? 도망가려던 그 자세 그대로 미유키의 바로 앞에 앉게 된 사와무라가 낭패를 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왜 여기 있냐. 자리로 돌아온 동기들이 사와무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감에 사와무라는 부루퉁하게 동기들의 손길을 받으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죠? 아, 고등학교 때?"

 세이도의 투수진은 항상 훌륭했습니다. 그들의 공을 받는 것은 제 행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미유키가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오롯이 저만이 담겨있는 그 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제 실책이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투수를 잃었습니다."

 정처없이 헤매던 눈이 미유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미유키는 사와무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와무라."
"넵."
"감독님 지시는 들었지?"
"이 사와무라 에이준, 반드시 보스의 기대에 부응해!"
"시끄러워, 사와무라."
"아파!"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모두, 앞에서 공을 받기 위해 자리 잡은 미유키. 아스라이 흩어져가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책감에 물든 그 사람의 얼굴이 보고싶지 않았다.

"어디 가?"

"집."


 그 때의 사와무라 에이준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사와무라 에이준은 이제 없었다. 이래서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눈 앞이 뿌얘짐에 눈을 벅벅 문지르며 강의실을 벗어났다. 하하호호 떠드는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나 도쿄에 남아있지 말걸 그랬나봐. 어떤 미련이 남아 자신이 도쿄에 남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의 그런 표정은 절대로 보기 싫었다는 것 뿐.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사와후루] cotton candy  (0) 2016.04.21
[료사와] 선물  (0) 2016.04.06
KnB 2016. 4. 24. 22:23

"미야지!"

"따라오지마!"


 벚꽃이 피는 봄 다시 만난 녀석은 짜증이 날 정도로 여전했다. 학년이 다르니 시간표가 다를 것이 분명한데 녀석은 전공시간마저 제 옆에 따라붙어오는 희안한 녀석이었다. 하야마, 라고 하면 라쿠잔의 예의 없는 무관의 오장? 그에 대한 미야지의 인식은 고작 그 정도였는데 지겹도록 달라붙어오는 하야마는 정의하자면 미운 정. 그게 제일 맞을 것이라고 미야지는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와 쫓고 쫓아내는 미묘한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미야지의 하루 일과로 자리잡았다.



"오늘은 어땠어?"

"그냥 그랬는데."

"뭐야, 그게."


 제 무릎을 베고 와하하 웃는 녀석의 얼굴을 한 대 칠까, 생각도 했는데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냉큼 베개로 얼굴을 가리는 하야마의 모습에 미야지는 기가 찬 웃음을 뱉었다. 좀 나오지 그래. 다리를 달달 떠니 치- 아쉬운 소리를 뱉으며 하야마가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네 집 안가냐, 어? 미야지가 그의 등을 꾹꾹 밟으니 하야마가 갈거야! 라며 잔뜩 신경질을 부렸다.


"예의는 어디에 밥 말아먹었냐, 어?"

"미야지는 폭력배!"

"야!"


 씩씩거리며 문을 나서기 직전 잠깐 멈춰있는 하야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쾅- 하고 부셔질듯 문이 닫히고 미야지는 그저 뒷목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평소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야마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 그 후로 하야마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편했다. 옆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녀석도 없고 조용한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미야지, 맨날 니 옆에 있던 그 사람 어디 갔어?"

"몰라."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는 그의 안부, 얼마나 자신의 일상에 파고들었는지 모든 곳에 하야마가 스며들어있었다. 고개를 들면 그가 누워있던 쇼파, 고개를 돌리면 그가 요리하던 부엌. 모든 것이 그 녀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제가 찾아간 그의 집은 텅 비어있었다.


"어디 가?"

"교토."

"뭐?"


그 집이 그 집일 줄 알았겠냐고. 짓씹듯 욕을 내뱉은 미야지가 신칸센에 올라탔다. 당장 역으로 나와. 그의 본가까지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고등학교 후배 친구인 그의 후배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이런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꼴사나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창 밖을 바라보는 미야지의 얼굴은 긴장으로 달아올라있었다. 안나오기만 해봐. 파인애플로 쳐버릴거야. 중얼거리던 미야지가 신칸센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설 때, 눈 앞에 그가 서있었다.


"나 찾았어요?"

"시끄러워."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숨도 고르지 못한 채 헉헉 거린 하야마가 그를 끌어안았다. 놔라. 그의 말에 오히려 더욱 세게 끌어안아오는 손길에 미야지는 결국 손을 날려 그를 떼어냈다. 아파! 오랜만에 만났는데! 불퉁한 그의 말엔 조금 기쁨이 담겨있었다. 낙엽이 지는 가을 조금 쌀쌀한 그 곳에서 다시 만났다.

'KnB'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우 썰 백업  (0) 2016.05.31
[황흑] 그 해 여름  (0) 2016.05.22
[류빙] 아날로그  (0) 2016.04.16
[황흑] 미필적 고의 (센티넬버스AU) 1  (0) 2016.04.15
[적흑] 꽃놀이  (0) 2016.04.12
"미유키 선배는."
"응?"
"왜 저랑 사귐까?"

 그 말에 그는 어떻게 대답을 했더라.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서히 멀어져갔다.

-2번 미유키 카즈야 선수! 유격수 앞 안타-!

가끔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있는 과거의 모습에서 조금, 아주 조금 변한 그 모습으로. 여름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당당히 서있었다.

"마셔도 되는거냐, 이거?"
"싫으면 먹지 말던가!"
"이야이야, 카네마루군이 사와무라군을 위해 만든거라니 이 사와무라 에이준 원샷을 해보겠습니다!"
"취했네."
"너한텐 듣고 싶지 않거든!"

 후루야군, 그만 마셔. 하루이치에게 잔을 빼앗긴 후루야가 우울한 눈으로 잔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시진 않네. 하루이치의 말에 후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가 파하고 인사불성이 된 사와무라를 토죠가 후루야에게 업혀주었다.

"조심해."
"응.."

 무거워- 후루야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후루야의 팔은 단단히 사와무라를 고정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와무라와 자취를 한 지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 사람을 보면 모두를 모아서 술을 잔뜩 마시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터였다.

"짜증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얄미운 사람. 미유키 카즈야에 대한 후루야 사토루의 정의였다.

"후루야."
"왜."
"목말라."
"이따 마셔."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등 위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날뛰는 사와무라 때문에 후루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짜증나.

"오늘 늦어?"
"응."

 왜? 되물어오는 후루야에 사와무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멍을 때리고 있는 사와무라에 후루야가 고개를 갸웃하곤 신발 앞코를 툭툭 쳤다. 잘 가. 제가 문을 열고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후루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야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대학으로 진학한 저와 다르게 프로로 입단한 후루야는 항상 바빴다. 어제도 후루야가 자신을 업고 갔다는 하루이치의 메신저에 사와무라가 고뇌에 빠져들었다. 카니타마라도 만들어야하나. 조용한 집 안 사와무라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후루야가 집에 돌아왔을 때 사와무라는 식탁에서 자고 있었다. 적막감 가득한 집은 사와무라랑 어울리지 않아. 후루야가 사와무라의 어깨를 흔들었다.

"...-"
"사와무라."
"후, 루야?"
"들어가서 자."
"왜 화를 내고 그래!"

 -미유키. 사와무라가 무심코 중얼거렸던 그 이름이 조금 불쾌했다.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사와] Unromantic Battery  (0) 2016.05.01
[료사와] 선물  (0) 2016.04.06
KnB 2016. 4. 16. 00:36

"저 아이는 누구지?"

"어제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난 저 애가 좋아."

"도련님, 아직 교육도 안 된 아이이고."

"쟤로 할래."


 등잔의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 잔뜩 빼어입은 어린 도련님을 따라 작은 아이가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년과 달리 아이는 온 몸에 성한 곳 하나 없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발 끝에 채이는 돌을 조심히 피하다 멈추어있는 소년을 미처 보지 못한 아이는 결국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신경 꺼."

"어떻게 그래."


 일어날 수 있겠어? 저를 잡는 소년의 팔을 내친 아이가 내 몸에 손대지 마- 하고 작게 중얼거리곤 제 스스로 벌떡 일어나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제가 사온 노예와의 생활이 제법 평탄치 않을 것이란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돗자리라도 깔아야하나. 소년은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아이는 꽤나 성격이 매우 거친 편이었다. 집에 있는 또 다른 노예들과 싸우고 와선 거만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던지 불이 켜져있는 주방에 가보니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몰래 꺼내먹는다던지 다른 노예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여기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아이는 그저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 후 아이를 만났을 때엔 다른 아이와 똑같이 웃으며 똑같이 저에게 존댓말을 했다.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저택에 불길이 타올랐다. 얼마 전 패전하여 잡혀온 포로들의 짓이라고 했다. 도련님인지라 누구보다 먼저 빠져나온 소년이 아이를 찾았다. 아이의 검은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도련님!"


 뒤에서 저를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친 채 저택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제 방 앞이었다. 저를 보자마자 달려와 멱살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안도감과 함께 웃음이 밀려왔다.


"지금 죽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와?"

"그래도 혼자가 아니잖아."


 입구가 막혀 나갈 수 없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불길에 아이를 꼭 껴안았다.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롯이 들리는 것은 불꽃이 타닥이는 소리와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였다.


"혼자면 무섭잖아."

"시끄러워."

"다행이야."

"이걸로 2번째야."


 뭐가? 소년의 말에 아이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음에는 내가 꼭 지켜줄게. 



"류!"

"히무로?"

"정신 놓고 있지 마."

"알았다해."


 튀어오른 배구공을 툭 친 히무로가 류를 잡아당겼다. 예전엔 똑부러지는 것 같더니, 히무로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히무로? 저를 내려다 보는 그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류에 히무로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2번 남았어."


 이번건 카운트 안할게. 히무로의 말에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의 류가 가만히 서있었다. 아츠시, 간식 그만 먹어. 무라사키바라를 따라가는 히무로를 천천히 뒤쫓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KnB'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흑] 그 해 여름  (0) 2016.05.22
[엽궁] 낙엽  (0) 2016.04.24
[황흑] 미필적 고의 (센티넬버스AU) 1  (0) 2016.04.15
[적흑] 꽃놀이  (0) 2016.04.12
[황흑] 사람을 찾습니다  (0) 2016.03.06

등급 심사를 받고 난 뒤 쿠로코의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뒤바뀌었다. 센터의 입구 쪽에 위치해있는 D급 숙소에서 센터의 안쪽에 위치해있는 S등급의 숙소로 옮겨졌으며 모래바람만이 날리던 훈련장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실내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테츠! 훈련하러 가는 거면 같이 가자.”

저 사격 훈련하러 가는건데요.”

? 그건 별로 상관없잖아. 몸이 움직이고 싶다고 난리라고.”

그렇습니까.”


쿠로코가 새로이 속한 팀은 천재들만 모여 있기로 유명한 A팀이었다. 세간에는 기적의 세대라고도 불린다는 모양이었지만 팀원들은 그런 호칭에 내색조차 않은 채 묵묵히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쿠로코, 조금 더 팔을 뻗어.”

.”


익숙해져있었던 느슨한 훈련시간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커다란 질책이 따라왔다.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니 모두가 위험해지는 것들에 극도로 예민해있었다. 더욱이 가이드 훈련만 받아오다가 지옥같은 센티넬의 체력훈련을 따라가기에 쿠로코의 체력은 한참 모자랐다.


좀 많이 먹으란거야.”

무리, 입니다.”

쿠로코!”


먹고 게워내고, 뛰고 게워내고의 반복이던 쿠로코의 몸이 A팀의 일정에 익숙해져 있을 때엔 시간이 꽤 지나 어엿한 팀의 일원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1년이 지나고 다시 시작되는 봄, A팀은 새로운 가족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키세 료타군?”

, .”

“A팀 전담 가이드 모모이 사츠키입니다. 오늘부터 A팀 훈련에 합류해주세요.”

, .”


A팀의 훈련장은 센터의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훈련장으로 가는 길은 제법 멀었지만 키세의 걸음으로는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모이의 걸음 폭에 맞추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제법 시간이 지나 있었다. 모모이가 문을 벌컥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장의 사람들은 각자의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테츠군, 어디 있어?”

테츠군?”

키세군의 교육 담당이야. 키세군은 아직 능력 발현이 된지 얼마 안됐으니까. 테츠군은 가이드거든.”

몇 급?”

“D급입니다.”


키세는 소리가 나는 곳을 둘러보았다. 이내 앞에 보이는 하늘색 머리칼의 소년에 히익,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쿠로코 테츠야입니다.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미는 쿠로코에 키세가 망설이다 이내 쿠로코의 손을 맞잡았다.


기운은 적당히 가져가주세요. 곧 훈련 시작하니까.”

, 죄송함다.”


잠깐의 훈련 후 고갈된 기운은 그새의 공허함을 참지 못하고 고작 D급 가이드의 기운을 잔뜩 흡수했다. D급 주제에, 키세의 머릿속에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S급인 저는 커녕 B급의 센티넬조차 제대로 가이딩을 못하는 가이드라고? 키세가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 덧 키세의 실력을 테스트할 겸 미니게임이 시작되었다. 능력은 쓰지 않고 오로지 신체능력만 사용할 것, 기본적인 체력테스트였다. 방탄복을 입고 페인트총을 받아든 키세가 훈련장을 둘러보았다.


쿠로코 테츠야 아웃.”

.”


모두가 숨어있는 황량한 훈련장 안에서 미처 숨지 못한 쿠로코가 상대편의 파란 페인트를 맞은 채 서있었다. 키세는 갈수록 그가 A팀이라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체력도 수준 이하, 사격도 수준 이하, 거기에 D급의 가이드. 키세의 이해선상에서 쿠로코가 이 팀과 부합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 D급 가이드가 이 팀에 있는검까?”

“D? 누가?”

쿠로코군이요.”

사츠키가 그래?”


키세의 말을 듣던 아오미네가 픽 웃어보였다. D급 가이드- 라고만 하기에 테츠는 조금 대단하지. 체력고갈로 뻗어있는 쿠로코를 바라본 키세가 아오미네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저게? 어디가?

'KnB'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엽궁] 낙엽  (0) 2016.04.24
[류빙] 아날로그  (0) 2016.04.16
[적흑] 꽃놀이  (0) 2016.04.12
[황흑] 사람을 찾습니다  (0) 2016.03.06
[먹흑] Play boy  (0)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