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B 2016. 4. 12. 09:35
"귀찮아."
"도련님."
"꽃 같은거 널려있잖아, 정원에."

 소년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사치에 불과했다. 최고가 되어야만 해. 뒤에서 저를 바라보는 집사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두꺼운 책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지만 소년은 익숙하다는 듯, 책갈피를 꽂아놓은 곳부터 펼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소년은 창가를 바라보았다.

"..."

 창가를 두드리는 작은 손. 손? 소년의 방은 2층이었다. 창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바짝 굳어있으니 다시금 창가를 두드려 온다. 슬금슬금 다가가 창문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니 제 손을 잡는 것 마냥 제 손이 있는 곳에 손을 대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별로 귀신 같지도 않고. 창문을 여니 그것이 창문에 팔을 탁- 걸쳤다.

"안녕하세요."
"너는 뭐지?"
"'뭐'요?"
"아무리 봐도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사람이 2층 건물을 그렇게 넘어다닐 순 없어. 설령 어른이라도 말이지."

 소년이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가리켰다. 새카만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하시는군요."
"그러는 너는 아이가 아닌 것 마냥 말을 하네."
"전 131살입니다! 성인이 된지도 31년이나 지났다구요."

 그 것은 저를 눈의 요정이라고 했다. 잭 프로스트라도 되냐, 소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그 요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제법 눈과 잘 어울렸다. 소담스러운 눈처럼 하얀 피부에 저와 정 반대의 푸른 하늘 같은 머리칼은, 정말 겨울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봄이잖아."

 소년의 말에 요정-으로 추정되는 것-이 움찔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소년의 말에 요정-인척 하는 것-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하나만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의자에 앉으려던 소년이 가만히 요정-이라는 것-을 바라보았다.

"꽃을 찾고 있습니다."

 아주 작고, 하얀 꽃인데요. 그가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듯 이리 저리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애처로웠다. 내가 널 도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지? 소년의 말에 그가 눈을 굴렸다.

"제가 찾은 꽃을 드릴게요."
"그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분명히."

 그의 말에 소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끄덕임에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제 꽃을 찾을 시간이었다.

"그 꽃이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원에 그런 꽃은 없어."

 소년의 말대로였다. 소년의 정원은 항상 소년의 머리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붉은 동백들 위로 보이는 벚꽃들과 그 사이에 서있는 소년은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하얗고 아주 작은 꽃입니다."
"이름도 몰라?"
"모릅니다."

 도와달라고 해놓고 아주 추상적인 힌트만 준 주제에 당당한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 소년이 실소를 흘렸다. 제 정원에 무슨 꽃이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겨울에서 봄에는 동백이 여름에는 장미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하얀 꽃이 피려면 아마 자연적으로 자라난 기특한 꽃일터였다.

"저기."
"아카시."
"네?"
"아카시 세이쥬로. 번듯이 있는 이름 놔두고 저기, 하고 부르지 마."

 아카시의 말에 그가 작게 웃어보였다. 그럼 제 이름도 지어주세요. 그의 말에 이름도 없냐며 아카시가 혀를 찼다.

"없는게 아닙니다. 이 곳의 이름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이름이라도 갖겠다는거야?"
"그런 셈이죠."

 그의 말에 아카시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 언뜻 스치는 이름에 그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쿠로코(黒子)."
"그게 제 이름입니까?"
"응."
"무슨 뜻입니까."
"검은 아이."

 전 하얗습니다. 작게 불평하는 그에게 아카시는 소리없이 웃었다. 눈은 짓밟으면 까매지잖아. 금방 더러워진다고. 아카시의 말에 쿠로코는 당신 성격 나쁘단 소리 많이 듣죠? 하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마음에 듭니다."
"뭐가?"
"처음 만난 인간에게 받은 이름, 절 생각해서 만들어 준 이름이니까요."

 웃어보이는 쿠로코는 정말 기뻐보였다. 아카시는 괜시리 고개를 돌렸다. 어? 붉은 빛 사이로 작게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꽃들을 헤치고 간 곳엔 작게 피어나있는 스노우드롭이 있었다.

"이런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저도 신기하네요."

 쿠로코가 스노우드롭에 손을 얹었다. 봉우리가 맺혀있던 스노우드롭이 그의 손 안에서 활짝 피어났다. 와- 아카시의 작은 탄성에 쿠로코가 쿡쿡 웃었다.

"먼 옛날 눈은 투명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색들을 가지고 있는 꽃들에게 색을 나누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단 하나의 꽃만이 눈에게 색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눈은 그에 대한 답례로 그 꽃을 가장 빨리 피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해요."
"독일에서 나오는 전설이군."

 아시네요? 쿠로코가 웃으며 살며시 꽃을 건들었다. 공중에서 피어나는 스노우드롭은 가히 장관을 이루었다. 너 요정 맞구나. 아카시의 실 없는 소리에 그걸 이제야 믿냐며 작게 투덜거린 쿠로코가 화관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잘 어울려요."
"...고마워."

 도련님! 멀리서 집사가 저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하신겁니까. 아카시가 대답을 하고자 옆을 바라보았을 땐 작은 스노우드롭의 꽃잎만이 남아있었다.

"그냥, 꽃 구경 했어."
"아까 나가자고 했을땐 싫으시다더니."
"나가는건 싫어."

 방으로 돌아가자. 화관을 머리에 쓴 채 방으로 돌아가는 작은 붉은 도련님은 제법 제 나이다워 보였다. 이른 봄이지만 싸리같은 눈이 흩날렸다. 새하얀, 그런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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