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

지금 오디션 시작한대요.”


대본을 정리해 품에 안은 쿠로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님이 계셔서 저희가 조금 더 수월하네요. 오디션 장소를 안내하던 스텝이 웃으며 말했다. 그저 제 작품이 조금이라도 쓴 소리를 안 들었으면 하는 이기심에 시작된 일이라 멋쩍게 웃은 쿠로코가 오디션 장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맞아주는 감독에게 꾸벅 인사를 한 쿠로코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배우 분 들어갑니다. 저 앞에서 스태프가 외치는 소리에 쿠로코가 자세를 바로 했다.


여러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고 또 다른 역할의 대본도 받아 연기를 했지만 앞에서 캐스팅을 위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명단을 뒤적이고 있었다. 쿠로코가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걔는 언제 나온대요? 조감독의 말에 쿠로코가 그를 돌아보았다. ‘?


, 키세 료요. 작가님 아세요?”

아니요.”

하긴. 이제 갓 데뷔한 배우니까요.”

잘 하나 봐요?”


쿠로코의 말에 감독과 조감독이 서로를 바라보다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보면 알아요. 마침 들어오네. 감독의 말에 쿠로코가 막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훤칠하게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이 꽤 많은 시청자들을 몰고 올 수 있겠구나, 하며 그의 이름을 찾아 두어 번 별을 그렸다.


카이조의 키세 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키세가 감정을 잡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에 쿠로코가 종이에 두었던 시선을 무대 위로 옮겼다. 약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남자는 제법 빛나고 있었다. 키세가 연기를 시작하고 쿠로코는 딱 두 마디의 평가를 내렸다.


영혼이 없네요.”

그게 문제죠.”


잘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영혼이 없다니까. 감독의 말에 쿠로코는 키세의 이름에 줄을 그었다. 미안하지만 연기 연습 더 하고 오세요. 속으로 작은 사과의 말을 덧붙이며.


최종 캐스팅은 감독님한테 맡길게요.”

하하, 어깨가 무겁네.”

제가 감독님이랑 작업 한 두 번 하나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디션을 본 배우들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한 번 훑은 뒤 감독에게 건네는 마음은 심란했다. 작가님, 대본 잘 부탁드려요! 등 뒤로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에는 더욱 더. 온갖 변수에 휘말리지 않고 무탈히 작품에 들어갈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오디션 장을 나섰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촬영장에 한 번 놀러오라는 이즈키의 말에 쿠로코가 촬영장을 찾았다. 야외의 세트장에 들어서자 이즈키가 그를 발견하곤 어서 오라며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오늘 촬영하는 게 이 부분이에요?”

어때? 제법 비슷한 곳으로 고른다고 골랐는데.”

괜찮습니다.”


아늑한 느낌의 작은 카페는 남자주인공 시노오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였다. 카페의 유니폼을 입고 동선 설명을 듣던 키세가 쿠로코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콘티 보세요. 제 입모양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키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감독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커피도 키세군이 직접 만드는 겁니까?”

아까 여기 사장이 와서 알려주고 갔지. 재밌다고 좋아하던데.”

그래요?”

근데 키세랑은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친해지긴요.”


여기 앉아도 되나요? 쿠로코가 촬영장비들 뒤편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사각지대니까 마음대로 해. 이즈키의 말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쿠로코가 여분의 대본을 받아 촬영장에서 일하는 막내작가에게 오늘 촬영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데 비어있는 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설명 다 들었습니까?”

!”

오늘은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겠네요.”

저 요즘 잘한다고 칭찬 받슴다!”


그렇죠? 확인이라도 받듯 물어보는 키세에 둘의 만담을 영화 관람하듯 지켜보던 이즈키가 그럼, 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자 것 보라며 키세가 씩 웃었다. 그렇게 가르쳐드렸는데도 못 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쿠로코의 말에 이즈키가 불법과외냐며 키세의 등을 퍽퍽 때리며 웃어댔다.


그 무슨 로봇 있잖아. 요즘 유명한 거. 난 처음에 그건 줄 알았다니까!”

, 저도 동감합니다.”

너무해!”


이제 촬영 시작합시다. 키세를 놀려먹을 만큼 놀려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즈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스텝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쿠로코 역시 구석에 앉아 스탠바이를 하고 있는 키세와 모모이를 지켜보았다. 주문을 하는 모모이에 제법 진지하게 커피를 내리는 키세의 모습은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어설퍼보였다.


!”

!”


샷이 담긴 잔이 바닥에 뒹굴었다. 구급상자 가져와! 부산스러운 스텝들을 뒤로 하고 제 손을 붙잡은 채로 당황하고 있는 키세의 손을 싱크대 속으로 집어넣고 물을 틀었다. , 작은 신음소리에도 화들짝 놀란 쿠로코가 물의 세기를 줄였다.


저 괜찮슴다.”

그래도 약 바르고 붕대 감아.”

.”


괜찮습니까? 붕대를 감고 있는 손을 살펴본 쿠로코가 키세의 안색을 살폈다. 갓 내린 커피에 손을 데였으니 퍽 놀랐을 터였다. 그런 쿠로코를 눈치챘는지 키세는 정말 괜찮다며 작게 웃어보였다. 잠깐 쉬었다갈게요. 쉬고 있으라며 일어서려는 키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른 이즈키가 대타라도 써야겠다며 스텝들을 모았다.


제가 할 수 있슴다!”

다쳐놓고선 뭘.”

제가 조심할게요!”


키세의 말에 이즈키가 그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한 번 해보라고 하죠. 쿠로코의 말에 키세가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쿠로콧치는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슴다.”

배우의 연기 열정을 막는 못된 사람은 아닙니다만.”


대신 한 번 더 다치면 그 땐 대타 써야합니다. 그 말을 들은 키세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말았다. 그럼 붓기 가라앉을 때까진 조금만 더 쉬고 커피나 마시죠. 이즈키의 말에 스텝들은 좋다며 각자 먹고 싶은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여기 이 부분 동선 말이야. 이즈키가 키세에게 수정된 동선을 알려주는 동안 할 게 없어진 쿠로코는 대본을 뒤적거리다 문득 테이블 위에 올려진 키세의 손을 발견했다. 제 손과 다르게 크고 기다란 손가락에 쿠로코는 그의 손 옆에 제 손을 올려보았다.


쿠로콧치?”

키세군, 손 진짜 크네요.”


이거 보세요. 제 두 배입니다. 아예 엎어져있는 키세의 손을 들어 제 손과 맞댄 쿠로코에 키세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 쿠로콧치이-? 삑사리가 나는 키세의 목소리는 아랑곳 않은 쿠로코는 신기하다며 맞댄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확실히 키가 크니까 손이 큰 것 같습니다... 키세군?”

키세가 죽어가기 전에 촬영 들어가자.”


이즈키가 키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세, 메이크업 고쳐라. 이즈키의 말에 키세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쿠로코는 이내 관심을 거두고 중단되었던 부분의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2016. 5. 3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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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3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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