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2015. 11. 5. 00:41

있지-
뭐야, 망설이지 말고 말해. 네가 말 끝을 흐리면 좀 무서우니까.

집을 나오는 길, 발 끝에 채이는 무언가에 밑을 바라봤는데 종이박스에 어린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가출한건가? 라고 생각하기에 아이는 너무나도 작았지만 출근하기 바빠 미처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넘어갔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옆 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밖에다 두면 어떡하냐며 하루종일 울고 있었다는 말에 저 아이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니 그 분이 아이고, 하시며 그럼 저 아이는 뭐냐며 혀를 차곤 집에 들어가셨다. 그제서야 생각난 정체불명의 박스에 집 앞으로 가니 아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발개지다 못해 부어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아이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으니 분명히 감기가 걸릴 터였다. 아이를 안고 상자를 들고 집에 들어와 소량의 아기용품이 있는 물건들을 뒤적였다. 이건 기저귀, 이건 젖병, 옷...... 그리고 마침내 물건들 사이에서 작은 쪽지를 찾아내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같이 쓴 듯 필체가 뒤죽박죽이었지만 내용은 같았다.

[죄송해요. 아기는 경찰서에 데려가셔도 돼요. 사실 키워주셨으면 좋겠지만(두 줄로 그어져 있다) 아기 이름은 히나타 쇼요에요. 정말 죄송해요. 좋은 분이신 것 같아서 아이를 맡겨요.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데려와버렸습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제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떨구곤 좌절스러운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아이라곤 키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아이를 데려오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스가쨩, 경찰서에 데려다줘."
"불쌍하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덜컥 애부터 낳고 무서워서 버리고 간거잖아. 스가쨩이 마음 쓸 필요 없어."
"그렇지만......."
"그럼 오늘만 데리고 있다가 내일 경찰서에 데려다주는거야. 알았지?"

대답을 하지 않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남몰래 재차 한숨을 쉬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애인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가쨩, 아기 키워본 적 있어? 제 말에 고개를 설레 젓는다.

"아기 키우는거 생각보다 힘들어. 육아휴직이 괜히 있는거 아니야. 부모가 하루종일 아이 옆에 붙어있어야하는데 스가쨩 할 수 있어? 스가쨩은 요즘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며."
"오이카와, 지금 휴식기간 아니야?"
"내가 키우라고?"
"그런 말은 아니지만......."

말 끝을 흐리는 것은 영락없이 그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집에 찾아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애 키우기는 타케루 이후로 해 본적도 없는데 무슨. 오이카와가 저는 절대 싫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럼 딱 3일만!"
"3일?"
"내일 주말이잖아. 내가 월요일에 월차 낼게. 딱 3일만 키워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경찰서에 데려다주자!"
"......알아서 해. 대신 절대 도와주지 않을거니까!"
"치사해!"

정말 안도와줄거라고 했다. 볼을 잔뜩 부풀리는건 귀엽지만 그래도 안봐줄거니까. 데이트 하려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애나 맡기려는 애인의 수작질에 당한 작은 불만의 표시였다.
2015. 10. 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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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B 2015. 9. 22. 22:25


*쿠로바스 완결/졸업 합작
졸업하는 3학년들 모두 유급해(짝



벚꽃이 만개한 봄, 일본의 모든 학교들이 졸업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카나가와의 카이조 고등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스포츠강호교답게 각을 맞추어 줄을 선 무리들은 손님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선배들은 어딨슴까?" "...코보리 선배랑 모리야마 선배는 저기. 카사마츠 선배는 저쪽 맨 아," "카사마츠 선배!" "시끄러!" 농구부 역시 각자 모여 선배들을 찾기 급급했다. 키세가 선배들의 위치를 물어보자 나카무라는 친절히 손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키세가 카사마츠 쪽으로 향하니 여학생들이 그 쪽으로 다가간 것은 당연지사, 카사마츠는 당황하며 키세를 보내지도 못한채 굳고 말았다. 선배, 그 여자공포증은 대체 언제 고쳐지는검까? 대학 가면 힘들다구요. 굳어있다고 해서 키세의 말을 못들은 것은 아니었다. 키세의 말에 깨어나기라도 하듯 발로 그를 걷어찬 카사마츠는 옆에 계신 선생님께 주의를 받아야만 했다. "카사마츠, 조심해." "사약 받으러 가냐?" "그치만..!" 어느샌가 제 뒤에 자리잡은 두 사람에 카사마츠는 남몰래 숨을 돌렸다. 그런 그를 아는 코보리와 모리야마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전국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팀을 이끈 카사마츠는 특별 표창상을 받기 위해 자리에 서있었다. 분명 자신은 그런 상을 받기엔 한참 모자라다 한사코 거절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전국엔 우수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기적의 세대인 키세가 있어도 그들은 더욱 성장해버린 세이린을 이길 수 없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진 것은 저의 탓일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멍청아." "이번만큼은 모리야마한테 찬성." "코보리는 나한테만 차가워, 흑." "징그러워." 뒷자리에서 투닥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도저히 상념에 빠져들 수 없게 만들었다. 후배들 앞에선 한없이 진중한 선배들이었지만 저들끼리 있을땐 그저 동갑내기 남자아이들일 뿐이었다. 조용히 해. 옆에서 눈치를 주는 선생님에 세 사람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끈 학생들에게 주는 특별 표창상입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말에 수상자들이 속해있는 부에서 수상자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수많은 이름들이 뒤섞인 가운데 카사마츠 유키오! 하는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시끄러워! 단상 위로 올라가면서 쉿-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니 오히려 멋있어요! 하는 부원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은 더럽게 안들어요. 잔뜩 짜증이 난 카사마츠지만 얼굴엔 작은 미소가 피어있었다. "농구부 카사마츠 유키오." 단정히 쓰인 4글자의 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학생들에게 다시 꾸벅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야하는데 들 수 없었다. "울지마." 전부 마찬가지였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주장이라는 책임감이 그둘을 짓눌렀다. 은퇴를 했어도 그것은 여전했기 때문에 체육관을 떠날 수 없었다. 선배 움까? 단상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앞에 서있는 키세는 요란하게 제 얼굴을 살피며 저를 붙잡았다. "안울어, 멍청아." "눈 빨간데요." "먼지 들어간건데." "비밀로 해드릴게요." 시끄러, 발로 키세를 툭 쳤다. 마지막까지 사랑의 매임까? 툴툴거리는 키세를 대동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오니 잘했다며 슥슥 머리를 매만지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쳤다. 장난을 치며 산만하게 구는 동안 졸업식은 끝이 나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았다. 부모님에게 꽃다발을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카사마츠 역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사내자식들이 사진을 찍자며 징그럽게 엉겨붙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닌지라 부모님과 몇 번, 동생들과 몇 번 사진을 찍었다. 맛있는거 먹고 오라며 부모님한테 용돈까지 받았다. 같이 사진을 찍자며 붙어오는 여자애들과도 (굳어서) 사진을 찍고 한숨을 돌릴 때 즈음 등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저랑은 안찍슴까?" "팔면 돈 되냐?" "넘햇!" "찍자, 찍어." 제 말에 키세가 신난 듯이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제 핸드폰을 넘겼다. 어깨동무를 해오는 키세의 손을 때리니 울상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리는 녀석이었다. 선배, 오늘 감독님이 맛있는거 사준다고 끝나면 연락하랬슴다. "근데 그걸 왜 귓가에 대고 말해." "여자들은 이러면 좋아하던데요." "내가 여자냐?" "선배는 선배임다!" 제 농구바보 후배는 말의 요점을 전혀 짚지 못한다. 짜증스레 키세의 얼굴을 밀치니 싱글싱글 웃으며 뒤로 물러날 따름이었다. 카사마츠, 가자! 문 밖에서 모리야마가 소리쳤다. 얼른 가요, 선배. 제 손을 잡고 이끄는 후배의 어깨가 어쩐지 듬직해보였다. 3학년들이 정문 앞에서 모이자 후배들도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타케우치 감독은 흔쾌히 쏘겠다며 카사마츠에게 카드를 주었다. 적당히 먹어라, 라는 말도 잊지 않은채. 식당 한켠을 빌려 서로의 졸업을 축하했다. 모리야마가 꽃다발을 들고 설치며 셀카를 찍어도 카사마츠는 흔쾌히 웃어넘겼다. 다 같이 사진 찍어요! 키세의 말에 하야카와가 동의하니 식당 구석에 부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카사마츠는 여기지." "선배, 얼른 오십셔!" "얼른 앉(으)세요!" 식당 주인분께 핸드폰을 드리고 사진을 부탁드리는 사이 맨 앞자리 한 가운데를 제 자리라며 마련해두었다. 기꺼이 앉아주마.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으니 옆에서 웃어, 웃어! 하는 모리야마였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한껏 미소를 지었다. "졸업 축하해!" "축하드립니다!" "선배, 가지 마세요!" "맞아요!" 우리의 학창시절은 끝이 났지만 새로운 청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찍어!" "카사마츠 선배 잡아!" "하지마! 죽을래?" "하나도 안무섭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끝이 났다고 슬퍼할 겨를은 없다. 아직 우리에게 달려야할 길은 많이 남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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