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B 2016. 4. 24. 22:23

"미야지!"

"따라오지마!"


 벚꽃이 피는 봄 다시 만난 녀석은 짜증이 날 정도로 여전했다. 학년이 다르니 시간표가 다를 것이 분명한데 녀석은 전공시간마저 제 옆에 따라붙어오는 희안한 녀석이었다. 하야마, 라고 하면 라쿠잔의 예의 없는 무관의 오장? 그에 대한 미야지의 인식은 고작 그 정도였는데 지겹도록 달라붙어오는 하야마는 정의하자면 미운 정. 그게 제일 맞을 것이라고 미야지는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와 쫓고 쫓아내는 미묘한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미야지의 하루 일과로 자리잡았다.



"오늘은 어땠어?"

"그냥 그랬는데."

"뭐야, 그게."


 제 무릎을 베고 와하하 웃는 녀석의 얼굴을 한 대 칠까, 생각도 했는데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냉큼 베개로 얼굴을 가리는 하야마의 모습에 미야지는 기가 찬 웃음을 뱉었다. 좀 나오지 그래. 다리를 달달 떠니 치- 아쉬운 소리를 뱉으며 하야마가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네 집 안가냐, 어? 미야지가 그의 등을 꾹꾹 밟으니 하야마가 갈거야! 라며 잔뜩 신경질을 부렸다.


"예의는 어디에 밥 말아먹었냐, 어?"

"미야지는 폭력배!"

"야!"


 씩씩거리며 문을 나서기 직전 잠깐 멈춰있는 하야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쾅- 하고 부셔질듯 문이 닫히고 미야지는 그저 뒷목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평소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야마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 그 후로 하야마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편했다. 옆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녀석도 없고 조용한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미야지, 맨날 니 옆에 있던 그 사람 어디 갔어?"

"몰라."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는 그의 안부, 얼마나 자신의 일상에 파고들었는지 모든 곳에 하야마가 스며들어있었다. 고개를 들면 그가 누워있던 쇼파, 고개를 돌리면 그가 요리하던 부엌. 모든 것이 그 녀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제가 찾아간 그의 집은 텅 비어있었다.


"어디 가?"

"교토."

"뭐?"


그 집이 그 집일 줄 알았겠냐고. 짓씹듯 욕을 내뱉은 미야지가 신칸센에 올라탔다. 당장 역으로 나와. 그의 본가까지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고등학교 후배 친구인 그의 후배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이런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꼴사나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창 밖을 바라보는 미야지의 얼굴은 긴장으로 달아올라있었다. 안나오기만 해봐. 파인애플로 쳐버릴거야. 중얼거리던 미야지가 신칸센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설 때, 눈 앞에 그가 서있었다.


"나 찾았어요?"

"시끄러워."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숨도 고르지 못한 채 헉헉 거린 하야마가 그를 끌어안았다. 놔라. 그의 말에 오히려 더욱 세게 끌어안아오는 손길에 미야지는 결국 손을 날려 그를 떼어냈다. 아파! 오랜만에 만났는데! 불퉁한 그의 말엔 조금 기쁨이 담겨있었다. 낙엽이 지는 가을 조금 쌀쌀한 그 곳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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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 선배는."
"응?"
"왜 저랑 사귐까?"

 그 말에 그는 어떻게 대답을 했더라.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서히 멀어져갔다.

-2번 미유키 카즈야 선수! 유격수 앞 안타-!

가끔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있는 과거의 모습에서 조금, 아주 조금 변한 그 모습으로. 여름 햇살을 받으며 그렇게 당당히 서있었다.

"마셔도 되는거냐, 이거?"
"싫으면 먹지 말던가!"
"이야이야, 카네마루군이 사와무라군을 위해 만든거라니 이 사와무라 에이준 원샷을 해보겠습니다!"
"취했네."
"너한텐 듣고 싶지 않거든!"

 후루야군, 그만 마셔. 하루이치에게 잔을 빼앗긴 후루야가 우울한 눈으로 잔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시진 않네. 하루이치의 말에 후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가 파하고 인사불성이 된 사와무라를 토죠가 후루야에게 업혀주었다.

"조심해."
"응.."

 무거워- 후루야가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후루야의 팔은 단단히 사와무라를 고정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와무라와 자취를 한 지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그 사람을 보면 모두를 모아서 술을 잔뜩 마시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터였다.

"짜증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면서도 가장 얄미운 사람. 미유키 카즈야에 대한 후루야 사토루의 정의였다.

"후루야."
"왜."
"목말라."
"이따 마셔."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등 위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날뛰는 사와무라 때문에 후루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짜증나.

"오늘 늦어?"
"응."

 왜? 되물어오는 후루야에 사와무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멍을 때리고 있는 사와무라에 후루야가 고개를 갸웃하곤 신발 앞코를 툭툭 쳤다. 잘 가. 제가 문을 열고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후루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루야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대학으로 진학한 저와 다르게 프로로 입단한 후루야는 항상 바빴다. 어제도 후루야가 자신을 업고 갔다는 하루이치의 메신저에 사와무라가 고뇌에 빠져들었다. 카니타마라도 만들어야하나. 조용한 집 안 사와무라가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후루야가 집에 돌아왔을 때 사와무라는 식탁에서 자고 있었다. 적막감 가득한 집은 사와무라랑 어울리지 않아. 후루야가 사와무라의 어깨를 흔들었다.

"...-"
"사와무라."
"후, 루야?"
"들어가서 자."
"왜 화를 내고 그래!"

 -미유키. 사와무라가 무심코 중얼거렸던 그 이름이 조금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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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B 2016. 4. 16. 00:36

"저 아이는 누구지?"

"어제 새로 들어온 신입입니다."

"난 저 애가 좋아."

"도련님, 아직 교육도 안 된 아이이고."

"쟤로 할래."


 등잔의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 잔뜩 빼어입은 어린 도련님을 따라 작은 아이가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년과 달리 아이는 온 몸에 성한 곳 하나 없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발 끝에 채이는 돌을 조심히 피하다 멈추어있는 소년을 미처 보지 못한 아이는 결국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신경 꺼."

"어떻게 그래."


 일어날 수 있겠어? 저를 잡는 소년의 팔을 내친 아이가 내 몸에 손대지 마- 하고 작게 중얼거리곤 제 스스로 벌떡 일어나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제가 사온 노예와의 생활이 제법 평탄치 않을 것이란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돗자리라도 깔아야하나. 소년은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아이는 꽤나 성격이 매우 거친 편이었다. 집에 있는 또 다른 노예들과 싸우고 와선 거만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던지 불이 켜져있는 주방에 가보니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몰래 꺼내먹는다던지 다른 노예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여기선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아이는 그저 소년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 후 아이를 만났을 때엔 다른 아이와 똑같이 웃으며 똑같이 저에게 존댓말을 했다.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저택에 불길이 타올랐다. 얼마 전 패전하여 잡혀온 포로들의 짓이라고 했다. 도련님인지라 누구보다 먼저 빠져나온 소년이 아이를 찾았다. 아이의 검은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도련님!"


 뒤에서 저를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친 채 저택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이를 발견한 것은 바로 제 방 앞이었다. 저를 보자마자 달려와 멱살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안도감과 함께 웃음이 밀려왔다.


"지금 죽게 생겼는데 웃음이 나와?"

"그래도 혼자가 아니잖아."


 입구가 막혀 나갈 수 없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불길에 아이를 꼭 껴안았다.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롯이 들리는 것은 불꽃이 타닥이는 소리와 아이가 울먹이는 소리였다.


"혼자면 무섭잖아."

"시끄러워."

"다행이야."

"이걸로 2번째야."


 뭐가? 소년의 말에 아이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음에는 내가 꼭 지켜줄게. 



"류!"

"히무로?"

"정신 놓고 있지 마."

"알았다해."


 튀어오른 배구공을 툭 친 히무로가 류를 잡아당겼다. 예전엔 똑부러지는 것 같더니, 히무로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히무로? 저를 내려다 보는 그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류에 히무로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2번 남았어."


 이번건 카운트 안할게. 히무로의 말에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의 류가 가만히 서있었다. 아츠시, 간식 그만 먹어. 무라사키바라를 따라가는 히무로를 천천히 뒤쫓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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