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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B 2016. 4. 12. 09:35
"귀찮아."
"도련님."
"꽃 같은거 널려있잖아, 정원에."

 소년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사치에 불과했다. 최고가 되어야만 해. 뒤에서 저를 바라보는 집사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두꺼운 책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지만 소년은 익숙하다는 듯, 책갈피를 꽂아놓은 곳부터 펼쳐 다시 읽기 시작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소년은 창가를 바라보았다.

"..."

 창가를 두드리는 작은 손. 손? 소년의 방은 2층이었다. 창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바짝 굳어있으니 다시금 창가를 두드려 온다. 슬금슬금 다가가 창문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니 제 손을 잡는 것 마냥 제 손이 있는 곳에 손을 대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별로 귀신 같지도 않고. 창문을 여니 그것이 창문에 팔을 탁- 걸쳤다.

"안녕하세요."
"너는 뭐지?"
"'뭐'요?"
"아무리 봐도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사람이 2층 건물을 그렇게 넘어다닐 순 없어. 설령 어른이라도 말이지."

 소년이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가리켰다. 새카만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말을 하시는군요."
"그러는 너는 아이가 아닌 것 마냥 말을 하네."
"전 131살입니다! 성인이 된지도 31년이나 지났다구요."

 그 것은 저를 눈의 요정이라고 했다. 잭 프로스트라도 되냐, 소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그 요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제법 눈과 잘 어울렸다. 소담스러운 눈처럼 하얀 피부에 저와 정 반대의 푸른 하늘 같은 머리칼은, 정말 겨울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봄이잖아."

 소년의 말에 요정-으로 추정되는 것-이 움찔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소년의 말에 요정-인척 하는 것-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하나만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의자에 앉으려던 소년이 가만히 요정-이라는 것-을 바라보았다.

"꽃을 찾고 있습니다."

 아주 작고, 하얀 꽃인데요. 그가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듯 이리 저리 손을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애처로웠다. 내가 널 도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지? 소년의 말에 그가 눈을 굴렸다.

"제가 찾은 꽃을 드릴게요."
"그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분명히."

 그의 말에 소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끄덕임에 그가 환하게 웃었다. 이제 꽃을 찾을 시간이었다.

"그 꽃이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원에 그런 꽃은 없어."

 소년의 말대로였다. 소년의 정원은 항상 소년의 머리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붉은 동백들 위로 보이는 벚꽃들과 그 사이에 서있는 소년은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하얗고 아주 작은 꽃입니다."
"이름도 몰라?"
"모릅니다."

 도와달라고 해놓고 아주 추상적인 힌트만 준 주제에 당당한 그의 모습이 어이가 없어 소년이 실소를 흘렸다. 제 정원에 무슨 꽃이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겨울에서 봄에는 동백이 여름에는 장미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하얀 꽃이 피려면 아마 자연적으로 자라난 기특한 꽃일터였다.

"저기."
"아카시."
"네?"
"아카시 세이쥬로. 번듯이 있는 이름 놔두고 저기, 하고 부르지 마."

 아카시의 말에 그가 작게 웃어보였다. 그럼 제 이름도 지어주세요. 그의 말에 이름도 없냐며 아카시가 혀를 찼다.

"없는게 아닙니다. 이 곳의 이름이 아니니까요."
"인간의 이름이라도 갖겠다는거야?"
"그런 셈이죠."

 그의 말에 아카시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 언뜻 스치는 이름에 그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쿠로코(黒子)."
"그게 제 이름입니까?"
"응."
"무슨 뜻입니까."
"검은 아이."

 전 하얗습니다. 작게 불평하는 그에게 아카시는 소리없이 웃었다. 눈은 짓밟으면 까매지잖아. 금방 더러워진다고. 아카시의 말에 쿠로코는 당신 성격 나쁘단 소리 많이 듣죠? 하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마음에 듭니다."
"뭐가?"
"처음 만난 인간에게 받은 이름, 절 생각해서 만들어 준 이름이니까요."

 웃어보이는 쿠로코는 정말 기뻐보였다. 아카시는 괜시리 고개를 돌렸다. 어? 붉은 빛 사이로 작게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꽃들을 헤치고 간 곳엔 작게 피어나있는 스노우드롭이 있었다.

"이런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저도 신기하네요."

 쿠로코가 스노우드롭에 손을 얹었다. 봉우리가 맺혀있던 스노우드롭이 그의 손 안에서 활짝 피어났다. 와- 아카시의 작은 탄성에 쿠로코가 쿡쿡 웃었다.

"먼 옛날 눈은 투명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색들을 가지고 있는 꽃들에게 색을 나누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단 하나의 꽃만이 눈에게 색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눈은 그에 대한 답례로 그 꽃을 가장 빨리 피울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해요."
"독일에서 나오는 전설이군."

 아시네요? 쿠로코가 웃으며 살며시 꽃을 건들었다. 공중에서 피어나는 스노우드롭은 가히 장관을 이루었다. 너 요정 맞구나. 아카시의 실 없는 소리에 그걸 이제야 믿냐며 작게 투덜거린 쿠로코가 화관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잘 어울려요."
"...고마워."

 도련님! 멀리서 집사가 저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하신겁니까. 아카시가 대답을 하고자 옆을 바라보았을 땐 작은 스노우드롭의 꽃잎만이 남아있었다.

"그냥, 꽃 구경 했어."
"아까 나가자고 했을땐 싫으시다더니."
"나가는건 싫어."

 방으로 돌아가자. 화관을 머리에 쓴 채 방으로 돌아가는 작은 붉은 도련님은 제법 제 나이다워 보였다. 이른 봄이지만 싸리같은 눈이 흩날렸다. 새하얀, 그런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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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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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네가 그 팀에서 멤버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하하, 마오는 순진하구나. 시리디 시린 푸른 눈동자가 눈을 마주해왔다. 너는 절대 그 곳에 녹아들 수 없어. 단호한 말이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저 네 직함만이 필요한거야. 너는 학생회니까.

 

나는 절대...”

사리?”

, .”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제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스바루에 마오는 제 뺨을 치며 정신을 다잡았다. 거울 너머로 저를 보는 시선들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시선을 틀어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이사라군?”

 

푸른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답답해, 나가고 싶어. 밖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마오는 목을 옥죄어 오는듯한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마치 로봇이라도 된 기분. 제가 속한 유닛에 대해 정리되어있는 서류를 바라보다 신경질적으로 펜을 던졌다. 시선이 자꾸만 저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군은 요즘 이상하니까.”

그래?”

내 뒷담이냐.”

이사라.”

 

교실에 들어서니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제 자리 근처에 모여 있는 멤버들을 볼 수 있었다. 일은 잘 하고 왔어? 제 뒤에 매달리는 스바루에 마오는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그가 매달렸던 어깨가 짓눌린 것 마냥 여전히 무거웠다.

학생회의 자료를 그들에게 넘기고 그들의 자료를 학생회에게 넘긴다. 학생회도 유닛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말을 해, 리츠.”

역시 나이츠로 오는게 어때?”

 

3자의 입장에서 본 저의 모습이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연하 주제에, ~군 주제에. 제 머리카락을 꾹꾹 잡아당기며 리츠가 입을 열었다. ~군 괜찮아?

 

나도 모르겠어.

 

이사라.”

?”

무리는 하지마라.”

 

학생회실로 향하는 길 마주친 호쿠토가 그렇게 말을 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거야? 의문을 가득 담은 제 표정을 이해는 한건지 호쿠토는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나 연습실에서 다시 만난 호쿠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바보콤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건전지가 다 닳아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처럼 한참을 연습실 입구에 가만히 서있었다.

 

움직이기 싫다, 라고 생각했다. 열이 올라 무거운 몸에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담임에게 전화까지 했으니 오늘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조금은 편해진 마음에 이불 속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어느새 선잠이 들었었는지 제 방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에 눈을 떴다.

 

사리~!”

아케호시군, 깨잖아?”

이미 깼다. 이사라, 몸은 어때?”

 

뭐야, 잠긴 목에 호들갑을 떨며 옆에 놓인 물잔을 입가에 가져다주는 스바루에 어설피 웃으며 마오가 잔을 받아들었다.

 

, 어쩐 일이야?”

~리가 아프다고 해서!”

아케호시군이 가자고 해서.”

아케호시가 호들갑을 떨어서.”

 

왔어. 심플하기 그지 없었다. 단순한 감기라고 사쿠마가 그랬잖아. 호쿠토의 말에 아침에 저희 집에 들렸다가 간 리츠가 제 말을 잘 전하기는 한 모양이라고 마오는 생각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홋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아케호시군......”

 

좁은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새로이 건전지를 갈아끼운 것 마냥 움직이지 못했던 발걸음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톱니바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 이사라군?”

홋케! ! !”

가만히 좀 있어봐.”

사리, 많이 아파?”

 

그 작은 소란이 너무 따뜻해서 마오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도 언젠간, 이 안에.

 

~.”

“......”

웃어(って)!”

 

울면 못생겨진다구~? 장난스러운 그 말에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고장난 로봇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림버스 AU

 파란 하늘, 창문 밖에서 들어온 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 밖을 바라보던 그가 제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저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어라 입을 연 그 순간,

 잠에서 깨버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늘 꿈에 나오던 사람이 있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오직 그의 눈과 머리뿐이었지만 꿈에 나오던 사람이 늘 동일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꿈에서 그와 하던 대화는 모조리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굉장히 따스한 느낌이라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테츠, 그만 좀 자."
"별로 안잤습니다만."

 그러냐, 머리를 흐트러트리는 아오미네 덕택에 이리저리로 뻗친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꾹 누르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누군가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순간 여사원들의 꺄아- 하는 탄성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여사원들보다 머리가 두개는 더 큰 신장의 그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익숙한 사람. 그러나 제 기억의 그는,

"아, 고맙슴다. 이것도요? 굉장하네요."

 저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 * *

 협력회사의 신입사원이라던 그는 종종 우리 회사에 찾아오곤 했다. 가끔은 상사와 어쩔땐 혼자. 단정히 수트를 차려입은 그는 여직원들의 마음을 훔치는데 성공했는지 그가 오는 날은 여직원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사무실을 메우곤 했다. 오늘 역시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최근 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덕택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쿠로코에겐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아오미네가 넘겨준 파일을 받아 확인작업을 마친 뒤 팀장실에 결재를 받으러 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저기!"

 순간 제 팔을 붙잡는 누군가로 인해 중심을 잃고 말았다. 떨어뜨린 서류철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빈 복도를 울렸다. 제 팔을 잡은 손을 따라 올라가니 예의 신입사원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입니까?"
"우리 구면이죠?"

 그렇죠? 어쩐지 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비장하기 이를데 없었다. 누구세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물음을 억누른 쿠로코가 글쎄요-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쿠로코의 말에 당황하며 손을 놓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비를 맞은 강아지의 모습 같았다.

"죄송함다......."
"아니에요."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신경쓰였지만 지금은 결재 먼저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 때려치고 싶다. 팀장실을 나오며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품 안의 사직서를 언제 내야 좋을지 고민하며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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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 2015. 11. 5. 00:41

있지-
뭐야, 망설이지 말고 말해. 네가 말 끝을 흐리면 좀 무서우니까.

집을 나오는 길, 발 끝에 채이는 무언가에 밑을 바라봤는데 종이박스에 어린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가출한건가? 라고 생각하기에 아이는 너무나도 작았지만 출근하기 바빠 미처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넘어갔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옆 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밖에다 두면 어떡하냐며 하루종일 울고 있었다는 말에 저 아이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니 그 분이 아이고, 하시며 그럼 저 아이는 뭐냐며 혀를 차곤 집에 들어가셨다. 그제서야 생각난 정체불명의 박스에 집 앞으로 가니 아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발개지다 못해 부어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아이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으니 분명히 감기가 걸릴 터였다. 아이를 안고 상자를 들고 집에 들어와 소량의 아기용품이 있는 물건들을 뒤적였다. 이건 기저귀, 이건 젖병, 옷...... 그리고 마침내 물건들 사이에서 작은 쪽지를 찾아내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같이 쓴 듯 필체가 뒤죽박죽이었지만 내용은 같았다.

[죄송해요. 아기는 경찰서에 데려가셔도 돼요. 사실 키워주셨으면 좋겠지만(두 줄로 그어져 있다) 아기 이름은 히나타 쇼요에요. 정말 죄송해요. 좋은 분이신 것 같아서 아이를 맡겨요.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데려와버렸습니다."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제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푹 떨구곤 좌절스러운 목소리로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아이라곤 키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아이를 데려오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스가쨩, 경찰서에 데려다줘."
"불쌍하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덜컥 애부터 낳고 무서워서 버리고 간거잖아. 스가쨩이 마음 쓸 필요 없어."
"그렇지만......."
"그럼 오늘만 데리고 있다가 내일 경찰서에 데려다주는거야. 알았지?"

대답을 하지 않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남몰래 재차 한숨을 쉬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애인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가쨩, 아기 키워본 적 있어? 제 말에 고개를 설레 젓는다.

"아기 키우는거 생각보다 힘들어. 육아휴직이 괜히 있는거 아니야. 부모가 하루종일 아이 옆에 붙어있어야하는데 스가쨩 할 수 있어? 스가쨩은 요즘 프로젝트도 맡고 있다며."
"오이카와, 지금 휴식기간 아니야?"
"내가 키우라고?"
"그런 말은 아니지만......."

말 끝을 흐리는 것은 영락없이 그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집에 찾아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애 키우기는 타케루 이후로 해 본적도 없는데 무슨. 오이카와가 저는 절대 싫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럼 딱 3일만!"
"3일?"
"내일 주말이잖아. 내가 월요일에 월차 낼게. 딱 3일만 키워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경찰서에 데려다주자!"
"......알아서 해. 대신 절대 도와주지 않을거니까!"
"치사해!"

정말 안도와줄거라고 했다. 볼을 잔뜩 부풀리는건 귀엽지만 그래도 안봐줄거니까. 데이트 하려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애나 맡기려는 애인의 수작질에 당한 작은 불만의 표시였다.
2015. 10. 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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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B 2015. 9. 22. 22:25


*쿠로바스 완결/졸업 합작
졸업하는 3학년들 모두 유급해(짝



벚꽃이 만개한 봄, 일본의 모든 학교들이 졸업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카나가와의 카이조 고등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스포츠강호교답게 각을 맞추어 줄을 선 무리들은 손님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선배들은 어딨슴까?" "...코보리 선배랑 모리야마 선배는 저기. 카사마츠 선배는 저쪽 맨 아," "카사마츠 선배!" "시끄러!" 농구부 역시 각자 모여 선배들을 찾기 급급했다. 키세가 선배들의 위치를 물어보자 나카무라는 친절히 손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키세가 카사마츠 쪽으로 향하니 여학생들이 그 쪽으로 다가간 것은 당연지사, 카사마츠는 당황하며 키세를 보내지도 못한채 굳고 말았다. 선배, 그 여자공포증은 대체 언제 고쳐지는검까? 대학 가면 힘들다구요. 굳어있다고 해서 키세의 말을 못들은 것은 아니었다. 키세의 말에 깨어나기라도 하듯 발로 그를 걷어찬 카사마츠는 옆에 계신 선생님께 주의를 받아야만 했다. "카사마츠, 조심해." "사약 받으러 가냐?" "그치만..!" 어느샌가 제 뒤에 자리잡은 두 사람에 카사마츠는 남몰래 숨을 돌렸다. 그런 그를 아는 코보리와 모리야마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전국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팀을 이끈 카사마츠는 특별 표창상을 받기 위해 자리에 서있었다. 분명 자신은 그런 상을 받기엔 한참 모자라다 한사코 거절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전국엔 우수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기적의 세대인 키세가 있어도 그들은 더욱 성장해버린 세이린을 이길 수 없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진 것은 저의 탓일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멍청아." "이번만큼은 모리야마한테 찬성." "코보리는 나한테만 차가워, 흑." "징그러워." 뒷자리에서 투닥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도저히 상념에 빠져들 수 없게 만들었다. 후배들 앞에선 한없이 진중한 선배들이었지만 저들끼리 있을땐 그저 동갑내기 남자아이들일 뿐이었다. 조용히 해. 옆에서 눈치를 주는 선생님에 세 사람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끈 학생들에게 주는 특별 표창상입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의 말에 수상자들이 속해있는 부에서 수상자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수많은 이름들이 뒤섞인 가운데 카사마츠 유키오! 하는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시끄러워! 단상 위로 올라가면서 쉿-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니 오히려 멋있어요! 하는 부원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은 더럽게 안들어요. 잔뜩 짜증이 난 카사마츠지만 얼굴엔 작은 미소가 피어있었다. "농구부 카사마츠 유키오." 단정히 쓰인 4글자의 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학생들에게 다시 꾸벅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어야하는데 들 수 없었다. "울지마." 전부 마찬가지였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주장이라는 책임감이 그둘을 짓눌렀다. 은퇴를 했어도 그것은 여전했기 때문에 체육관을 떠날 수 없었다. 선배 움까? 단상에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앞에 서있는 키세는 요란하게 제 얼굴을 살피며 저를 붙잡았다. "안울어, 멍청아." "눈 빨간데요." "먼지 들어간건데." "비밀로 해드릴게요." 시끄러, 발로 키세를 툭 쳤다. 마지막까지 사랑의 매임까? 툴툴거리는 키세를 대동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오니 잘했다며 슥슥 머리를 매만지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쳤다. 장난을 치며 산만하게 구는 동안 졸업식은 끝이 나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았다. 부모님에게 꽃다발을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카사마츠 역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사내자식들이 사진을 찍자며 징그럽게 엉겨붙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닌지라 부모님과 몇 번, 동생들과 몇 번 사진을 찍었다. 맛있는거 먹고 오라며 부모님한테 용돈까지 받았다. 같이 사진을 찍자며 붙어오는 여자애들과도 (굳어서) 사진을 찍고 한숨을 돌릴 때 즈음 등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저랑은 안찍슴까?" "팔면 돈 되냐?" "넘햇!" "찍자, 찍어." 제 말에 키세가 신난 듯이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제 핸드폰을 넘겼다. 어깨동무를 해오는 키세의 손을 때리니 울상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리는 녀석이었다. 선배, 오늘 감독님이 맛있는거 사준다고 끝나면 연락하랬슴다. "근데 그걸 왜 귓가에 대고 말해." "여자들은 이러면 좋아하던데요." "내가 여자냐?" "선배는 선배임다!" 제 농구바보 후배는 말의 요점을 전혀 짚지 못한다. 짜증스레 키세의 얼굴을 밀치니 싱글싱글 웃으며 뒤로 물러날 따름이었다. 카사마츠, 가자! 문 밖에서 모리야마가 소리쳤다. 얼른 가요, 선배. 제 손을 잡고 이끄는 후배의 어깨가 어쩐지 듬직해보였다. 3학년들이 정문 앞에서 모이자 후배들도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타케우치 감독은 흔쾌히 쏘겠다며 카사마츠에게 카드를 주었다. 적당히 먹어라, 라는 말도 잊지 않은채. 식당 한켠을 빌려 서로의 졸업을 축하했다. 모리야마가 꽃다발을 들고 설치며 셀카를 찍어도 카사마츠는 흔쾌히 웃어넘겼다. 다 같이 사진 찍어요! 키세의 말에 하야카와가 동의하니 식당 구석에 부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카사마츠는 여기지." "선배, 얼른 오십셔!" "얼른 앉(으)세요!" 식당 주인분께 핸드폰을 드리고 사진을 부탁드리는 사이 맨 앞자리 한 가운데를 제 자리라며 마련해두었다. 기꺼이 앉아주마. 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으니 옆에서 웃어, 웃어! 하는 모리야마였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한껏 미소를 지었다. "졸업 축하해!" "축하드립니다!" "선배, 가지 마세요!" "맞아요!" 우리의 학창시절은 끝이 났지만 새로운 청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찍어!" "카사마츠 선배 잡아!" "하지마! 죽을래?" "하나도 안무섭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끝이 났다고 슬퍼할 겨를은 없다. 아직 우리에게 달려야할 길은 많이 남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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